대훈053-654-7788
2015. 6. 8. 10:49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으며, 어느 사람치고 자기 자식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으랴. 부모들은 자식이 태어나면 자식이 부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뜻에서 대길(大吉)이니 복동(福童)이니 장수(長壽),수길(壽吉)이니 하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나 그러한 이름을 가진 이가 반드시 행복하고 장수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가는가 하면 자식도 없이 쓸쓸히 살다가 50살도 넘기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참, 건강하게 생겼어.” 하고 모두를 부러워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비명에 쓰러지는가 하면, “저렇게 약해서 무슨 일을 ….” 하고 염려했던 사람이 의외로 큰 성공을 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흔히들 “그 사람 운명이지”또는 “그 사람이 타고난 팔자지” 하고 대답한다. 타고난 운명, 즉 사주팔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천운이 좋지 않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그럼 한 부모 밑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는 같은 사주, 즉 같은 운명을 타고 났으니 두 사람이 한날 한시에 성공하고 실패도 하고 또 한날 한시에 죽어야 될 터인데도 그렇게 살았다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을 뿐더러 듣지도 못했다. 한 부모가 아니라도 지금까지 같은 시간에 태어난 아이, 말하자면 생년월일(生年月日)이 같은 이는 전국적으로 조사해보면 상당히 있을 것이다. 그럼 이들도 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왔고 걸어가야 할 터인데 그렇지가 않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에 이미 가지고 나오는 타고난 운명, 즉 선천운(先天運) 또는 선천명(先天命)과 뒤에 이 선천운과 연관작용하고 조화를 이루어 새로이 만들어지는 후천적인 운명, 즉 후천운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보면 반드시 사주팔자(四柱八字) 즉 선천운만이 그 사람의 운명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지배한다고 볼 수 없다. 원인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다른 것이라고는 이름뿐이다. 이를 보면 이름 석자가 그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후천적인 운명, 즉 후천운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이 성명임에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성명만이 전체를 지배한다고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동성동명인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지만 같은 운명의 길을 가지는 않는다.
예컨대 이승만(李承晩)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전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같은 인생의 길을 가야할 터인데 그렇지가 않다. 그러므로 성명을 가지고 그 사람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을 판단, 감정하거나 작명을 할 때에는 앞으로 설명할 음양오행설을 토대로 그 사람의 사주(四柱)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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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학에서 좋은 이름 길명(吉名) 또는 양명(良名)을 가져와 성공으로 이끌고, 나쁜 이름 흉명(凶名) 또는 악명(惡名)은 불운(不運)을 가져와 실패와 재난을 초래한다는 그 증거는 무엇인가? 성명을 가지고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는 건 미신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다는데, 다음 설명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성명학은 오늘날 갑자기 생긴 학설이 아니며, 이미 수천년 전부터 중국에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성명은 분석, 연구하여 통계학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며, 그 비결은 오랜 세월을 거쳐 인간의 삶에서 얻어진 경험의 결과이다.
둘째, 성명학은 넓고 넓은 우주와 인간 사회의 삼라만상은 음(陰)과 양(陽)의 조화로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음양설(20세기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와 상통됨)을 토대로 하여 그 근본이 되는 다섯 가지의 정기(精氣) 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운행하며 서로 돕고(五行相生) 서로 이김(五行相剋)으로서 낳고 자라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이치(오늘날의 원소의 화합물·혼합물의 생성 소멸의 이치)에 맞추어 고찰하고 연구한 학설이다.
셋째, 성명학은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텔레파시(정신감응, 표정·언어·동작을 보거나 느끼지 않고도 모든 이미지(인상)가 다른 사람에게 정신으로서 전달이 되는 심령현상)현상이며, 최면요법(催眠療法)과 같은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아무리 많은 군중속에 믇혀 있더라도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금방 의식적으로 반응이 일어나 몸을 음찔거리고 움직이게 되며, 잠을 자다가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번쩍 눈을 뜨게 되고, 벽보에 붙어 있는 수많은 성명들 중에서도 자신의 성명만이 얼른 눈에 띄게 되고, 커보이는 점 등은 모두 성명 자체에 지니고 있는 정신의 작용이요, 영적(靈的) 암시력이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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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멀쩡하고 똑똑한 사람을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저 사람은 바보야,” “저 사람은 병신이야, 병신.”하고 볼 때마다 거듭거듭해서 불러대면 그 사람은 점점 바보, 병신이 되어가는 이치와 같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명의 글자 중에 나쁜 운(흉운)을 초래할 암시력이 들어있을 때에는 그 성명을 불러대는 횟수가 거듭되면 될수록 나쁜 운을 끌어들이는 힘이 점점 강력하게 되어 마침내 불운(흉운)을 맞게 되어 실패와 재난을 당하게 된다. 또 그 반대로 좋은 운(길운)을 초래할 암시력이 들어있는 성명은 그 성명을 부르고 쓰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길운을 불러들이는 힘이 강력해져 마침내 성공과 행복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성명을 고친 뒤로 일약 부자가 된 예를 볼 수 있다. 이것도 위에서 설명한 이치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선천운에는 큰 재운(財運)이 있으나 이를 유도하는 힘(성명 운)이 약하거나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명(改名)함으로서 그 유도력의 막힌 곳을 뚫고 강력하게 뒷받침해 줌으로서 행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그렇다면 부귀영화를 누렸던 대부호의 이름이나 유명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짓거나 개명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그대로 본따서 이름을 짓거나 [작명(作名),찬명(撰名)] 개명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대성(大姓)은 부재(不再)하고 대명(大名)은 무우(無又), 즉 유명했던 성(姓)의 운은 다시 오지 않고 유명한 이름의 운은 다시없다는 옛말도 있을 뿐 아니라, 선천운이 나쁜 사람에게 강한 유도력만 붙여 주는 격이 되어 더욱 나빠지게 되어 도리어 패가망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을 짓거나 개명할 때에는 먼저 그 사람의 선천적인 운명, 즉 선천운이 좋고 나쁨을 짐작하여 그에 알맞게 지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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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훈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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